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베 볼 (문단 편집) === 영화 제작의 비밀 === 이렇듯 내는 영화마다 쪽박을 참에도 우베 볼은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본인이 중동의 석유 재벌이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사업가도 아닌 이상 이런 망작 전문 감독을 후원해줄 사람도 흔치 않을 터인데 어째서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는 그의 독특한 수입 구조에서 기인한다. 그의 수입 구조는 독일 세금 감면법(tax shelter)을 역이용한 것에 있다. 독일 영화 산업을 일으키려고 법을 제정한 당시에 독일에서는 영화에 투자를 하면 한 마디로 투자액의 절반을 정부에서 돌려받을 수 있었고, 이 법에선 독일에서 소유권을 가진 영화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투자액의 100%를 세금 감면액으로 신고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원래라면 세금으로 추징될 순수 자기자산 뿐 아니라 설령 투자금이 대출을 받은 자금이라도 그러했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에 연관된 모든 소요 금액 또한 그렇게 신고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는 영화가 올린 수익금에 한해서만 세금을 내면 된다., 물론 이런 흑자 상황에선 투자금 반액 보전을 해줄 필요가 없으니 투자금 반액 보전 혜택은 없다. 투자금 이상으로 투자자가 이익을 보면 원래 세금으로 나갔을 투자금은 그만큼 도로 세금으로 추징되고 투자금 지분따라 분배된 이익은 투자금보다 일반적으론 당연히 적다. 따라서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투자한 투자자들로서는 영화가 망하고 적자가 나게 되면 이익이다. 투자자는 원래라면 세금으로 전부 국세청에 털렸을 돈의 '''반액을 독일 정부가 되돌려 주니 결과적으로 50% 세금 감면'''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독일 정부가 세액 공제 제도를 잘못 만들어 반액 환급까지 해준 데다 적자 경영일 때 유리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엄청난 대박으로 몇 배 이익을 볼 장사가 아닌 이상 오히려 영화가 망해서 수익을 안 보는 게 세금 피난처로 영화 투자를 한 사람들에게는 더 낫다. ~~[[프로듀서스]]?~~ 그리고 망한 영화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우베 볼은 영화 투자에 이러한 혜택을 주는 독일 조세법 덕분에 어렵지 않게 '''세금 피난처를 찾던 해외 투자자들, 특히 미국으로부터 제작비를 모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기했듯, 독일 정부가 돈을 대주는 모양새가 되니 결과적으로 이것은 곧 독일에서 혈세를 모아다 쌩판 상관없는 미국 부자들의 세금을 보전해주는 일이 된 것이라 [[의도는 좋았다|의도는 좋은 제도였으나]] 의회에서 폐지가 논의되다 결국 폐지되었다고 한다. '''단지 이 우베 볼 한 명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위에 열거한 영화 제작비들이 평균 수천만 달러라는 거액임에도 수익이 형편없는지라 제도가 폐지되기 전에도 투자액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당연한 거'''다. 하다못해 본전치기라도 해야 하는데 2차 시장 합쳐도 흥행 및 수익이 너무 처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대에 찍은 영화들은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저예산으로 만들었다. 2012년에 제작한 '좀비 대학살'은 겨우 1백만 달러로 제작했으며 모처럼 연출한 '던전 시즈 왕의 이름으로 3'는 350만 달러로 제작했으며 '레드 피퍼의 전설'이란 영화는 380만 달러로 제작했다. 더불어 포스탈을 마지막으로 미국 박스오피스 모조에선 그의 영화 흥행 수익을 집계조차 안하며 극장 개봉도 외면당해서 은퇴하기 전까지 주로 비디오 및 2차 시장용 영화 업계에서 활동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우베 볼은 '''타성에 젖어서''' 이런 삼류 영화들을 계속 촬영한 것이다. 독일의 문화예술 관련 법 때문에 돈을 물쓰듯 펑펑 쓸 수 있게 되었고 우베 볼은 투자자들의 돈이 넘쳐나는 상황 속에서 '''어차피 돈은 무한정 있으니까'''라는 생각에 경제적인 부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아주 완전히 자기 꼴리는 대로 영화를 찍었다. 그 탓에 우베 볼 = 저질 영화 전문 제작자라는 공식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사실 독일의 국가적 영화 진흥 정책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독일의 영화 예술 부흥을 이끈''' 정책이다. 1920년대 UFA의 지원, 심지어는 나치도(프로파간다 목적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영화 자체는 꾸준히 지원했으며, 분단 후 서독과 동독 역시 각자 나름의 방법대로 영화를 예술로 존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21세기가 다 되어서 이 트롤러 한명 때문에 애꿎은 독일 내 영화 유망주들만 금전적 부담을 더 떠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